2014. 7. 22. 03:11

* 현대 패러렐입니다. 유학생 하랑이와 무역회사 다니는 티엔

 

 

 

 

 

 

퇴근 후 플랫에 돌아온 티엔을 반기는건 지독한 단내였다. 집 안을 채운 달디단 증기와 바닥까지 몇개 떨어져 있는 형형색색의 유산지와 슈가 토핑들. 현관에서 잠시 멍청하게 서서 꽤나 집중해서 초콜릿을 젓고 있는 그의 나이 차가 있는 연인을 바라보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탁상달력이 내일이 발렌타인이라는걸 알려주었다. 꽤나 성공가도의 길을 달려온 그의 화려한 경력에 희생된 그의 연애내력 덕에 내일이 무슨 날인지도 거의 잊고있던 티엔은 어쩐지 상점가에 온통 핑크색 일색이었다던가, 오늘따라 여사원들이 삼삼오오 흥분한 기색으로 수다를 떨었다던가 했던것을 떠올렸다. 날이 날인만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그래도 참 의외인 것이 하랑과 초콜릿의 조합은 차마, 더군다나 하랑이 초콜렛을 직접 만들고 있는 광경은 꿈에서도 상상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티엔이 현관에서 망연히 서있던 말던 하랑은 흰색 앞치마까지 두르고 머리를 높게 묶고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을 움직였다. 편하게 면티와 집에서 입는 반바지-라기엔 조금 짧은 바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몰라도 티엔은 그걸 여성의 것이라 생각했고 하랑은 아니라며 둘이 입씨름을 한적 있는 물건. 결국 아닌걸로 밝혀진 뒤로 보란듯이 집에서 입고다닌다-를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하랑이 몸을 살짝 흔들기도 한다. 보기드물게 흥에 겨운 귀여운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는데 동시에 살짝씩 흔들리는 하얀 다리나 허리가, 머리칼이 흔들리며 보였다 말다를 반복하는 곧은 목이 입을 마르게 만들었다.

 

 

하랑, 하고 뒤에서 부르니 흠칫 과하게 화닥거리며 놀라는 모양이 다치겠다 싶어 티엔은 허리를 단단히 잡아 제게 기대게 했다. 하랑의 등이며 어깨가 자연스럽게 티엔의 가슴에 밀착되자 그는 숨결을 하랑의 귓가 언저리-뺨-목에 부비며 입술을 뭍었다. 특유의 보송한 솜털이 가시지 않은 피부가 입술 아래서 감미롭다. 그대로 숨을 들이마시니 하랑이 쓰는 스킨과 샴푸의 향이 훅 끼쳐오는 것이 샤워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것 같았다. 그리고 특유의 살내음. 뭐야, 당황과 묘한 분위기에 휩쓸린 어딘지 부끄러움이 미끄러지는 목소리로 하랑이 물어온다. 티엔은 고개를 살짝 들어 하랑의 귓불을 물었다. 아프지 않게 살짝 이로 간질이고 자신의 숨결이 닿아 하랑이 흠칫흠칫 떠는 것을 즐기면서 완전히 밀착한 지금을 즐겼다. 하랑의 입에서 달큰한 숨이 파르르 터져나올때 고개를 틀어쥐어 당기면 앗 하고서 벌어지는 입술을 머금는다. 딱 맞춘듯한 온기와 적당한 틈, 촉촉한 혀와 귀엽게 퍼득이는 맥박이 환상적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조금 더-하고 파고들어 잡아당기면 완연하게 헐떡이는 숨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어서 계속 조금 더 하면서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하랑은 언제 두 사람이 떨어졌는지도 인식하기 전에 내려앉는 가벼운 입맞춤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가볍게 닿은 입술이 본인은 모르는 듯 하지만 그린 듯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심장 한 구석이 쿵 내려앉는다. 나쁜 남자의 표본이라고 생각되는 그 무심함과 무의식 중에 나오는 상냥함의 갭에 언제나 놀라는 것이다. 저렇게 남의 심장을 쥐고서 흔들어대고는 평범하게 다녀왔다, 인사하는 나쁜놈이었다. 씨이... 입술이 약간 삐죽거리려는걸 간신히 참고서 인사 한번 요란하게 한다면서 그러면서도 뺨을 붉히는 연인의 손을 잡고서 묻은 흰색 초콜릿을 핥아주었다. 두번째 손가락과 손등에 조금씩 묻은 초콜릿이 야하게 할짝이는 티엔의 붉은 혀 아래서 삭삭 닦여 나갔다. 말캉하고 따뜻한 것이 손가락 사이까지 순식간에 훑고 지나가자 하랑이 어버버 이따금씩 보여주는 다정한 모습을 따라가질 못하고 시선이 흔들린다. 티엔은 훗, 작게 속으로 웃고서 하랑의 손을 내려서 아까 놓친 나무 주걱을 쥐어주었다. 씻고오마. 뒤돌아선 티엔의 등에다 대고 소리없는 비명을 흘리는 하랑은 아직 티엔의 기분이 왜 저렇게 좋은지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 다만 초콜릿 같은걸 만드는 모습이라던가 속수무책으로 그의 페이스에 휘말린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 방방 뛸 뿐이었다.

 

 

 

 

 

 

*****

 

 

 

 

 

아침이 밝았다. 새벽에는 조금 비가 뿌렸지만 아침엔 운 좋게도 날이 개어서 왠지 기분이 좋았다. 하랑이 아침 특유의 싸늘함에 떨며 씻고 옷을 입기 바쁜 와중에 티엔은 이미 옷을 입고서 아침을 차리고 있었다. 동거 첫날 그가 아침을 직접 차려내오는 모습이 낯설어 내가 해도 되는데, 하자 "사랑하는 사람을 불과 칼이 있는 위험한 곳에 들이라는거지?" 하는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이후로 아침은 항상 티엔의 몫이었다. 물론 다른 일이야 같이 사는 이상 어느정도 분담해서 하고있지만 아침 만큼은 티엔이 고집을 부리고 있다.-티엔은 아침에 비몽사몽한 하랑이 잠이 채 깨기전에 그 위험한! 주방에 발을 들이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아침을 먹고 뒷정리를 하는 하랑을 돌려세워 어느 것이 나은가 두 가지 타이를 들고 티엔이 물었다. 깔끔하고 모던한 색상과 디자인이 무난한 두 타이를 보며 망설이던 하랑이 오늘 중요한 날이라며-하고선 승부 아이템을 옷장에서 찾아다 건냈다. 언젠가 하랑이 선물한 적이 있는 깔끔한 느낌의 타이였는데 아랫부분에 멋들어진 흑색의 용이 자리하고 있어 행운의 부적쯤 되는 물건이었다. 직접 매어달라고 할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 하랑이 자진해서 바투 다가왔다. 어른스럽게 자신이 리드해나가다가도 사소한 것에서 망설이는 티엔과 그런것엔 거리낌 없는 하랑은 맞춘듯이 들어맞았다.

 

 

그날 티엔은 약간 서툴게 묶인 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퇴근할 때까지그건 그런대로 단단히 매여있었다.

 

 

 

 

 

***

 

 

 

 

 

[오늘 저녁은 함께하지.]

 

 

 

하랑은 학교가 끝날즈음 문자를 한통 받았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교양 교수의 늘어지는 목소리를 한 없이 무료한 표정으로 듣고있던 하랑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본 이글이 옆자리의 마틴을 쿡쿡 찔렀다. 저거 저거, 분명 그 연상의 애인이 틀림없다고. 교수가 칠판으로 시선을 돌릴 때마다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던 마틴도 장난스러운 생기를 띈다. 그도 그럴게 하랑은 고백이나 소개팅 제의를 언제나 잘라냈는데 자신은 애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졸라대도 사진이나 하다 못해 통화장면을 보인적도 없고 저희들에게는 말한 적도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동거중이라지 않나 아무튼 베일에 가려진 대단한 애인 되시겠다. 그마저도 친구들이 아는거라곤 경제적으로 풍족한 연상이라는것 뿐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이글이 너 혹시 인형놀이에 어울리게 된거 아니냐고 했다가-왕왕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연상의 원조를 받으며 애인 역을 수행하는 계약관계. 실제로 이글은 가출했을 때 그렇게 지냈다고- 그야말로 가공할 한방을 맞아야했다.

 

 

티엔은 자신에게도 그렇지만 이제 대학 생활을 하는 하랑에게도 자신들의 관계가 밝혀지는 것이 별로 좋지 않을거라며 주변에 알리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그게 좀 엄격할 정도라 하랑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섭섭할 정도였다. 가뜩이나 그 문제에는 예민한데 이글은 지뢰를 밟고 크게 데인거였다. 하랑은 교수의 마치겠다는 말과 동시에 명치를 씨게 맞아 잠시 의식을 잃고 널부러진 이글을 뒤로한채 답장을 꾹꾹 찍어보냈다. 이글이 저래뵈도 나름 걱정해 주는거라는걸 알고있지만 역시 저렇게 말로 들으면 무진장 기분이 상하는 것이다.

 

 

 

[지금 끝났어. 언제 와?]

 

 

 

나름 금방 답장을 했으니 혹시나 싶어 한참이나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으려니 어느새 몸과 마응을 추스르고 짐까지 챙긴 친구들이 나가자고 불렀다. 역시나 답장은 오지 않아서 섭섭해 하는 하랑을 눈치채고 마틴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하랑은 친구들과 교문으로 향하면서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어 가방을 열었다. 나름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초콜렛이 앙증맞았다. 물론 꾸러미에 쓸어담아 그다지 멋스럽게 담긴건 아니지만 어차피 싸나이라면 겉보기 올망졸망한 것보다야 양이지! 싶어 한 꾸러미가 거진 커다란 파인애플 크기라는건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물론 같은 사내놈들인 이글과 마틴은 박장대소하며 마응에 들어했다. 말로야 니네가 하나도 못받을까봐 만들었다지만 사실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녀석들이니 따로 나가서 받아온게 많지 않을까 싶어 싫어하면 어쩌나 했더니 무척이나 좋아해서 마음이 놓였다. 어차피 티엔이야 단건 잘 못먹으니 잘되었다 싶었다.

 

 

왁자하게 떠들면서 초콜렛을 하나씩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정문 가까이 왔는데 사람들이 뭔가를 바라보며 은근 몰려있길래 뭔가 했더니 왠 삐까한 차가 야성적인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것이었다. 선팅이 좀 되어있는지라 안에 사람이 잘 안보인다 했더니 자신들이 지나갈때 클락션이 울렸다. 자연히 고개가 돌아가고 바라본 곳에선 미끄러지듯 차문이 열리더니 정말 예상치 못한 사람이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제게 걸어왔다. 순간 얼음이 된 하랑의 곁에 다가와 그에게 둘러진 팔들에서 자연스럽게 끄집어낸 티엔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몸에 잘 붙는 슈트가 소름끼치도록 잘어울리는 남자가 다짜고짜 다가오자 놀랐던 이글과 마틴은 이제 벙찐 표정으로 입을 벌렸고 하랑은 아직도 제정신을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

 

 

티엔의 손에 이끌려 조수석에 착석한 하랑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우두망찰 하고있으려니 어느새 운전석에 자리잡은 티엔이 몸을 틀어 안전벨트를 매어주었다. 스슥-하고 벨트가 잡아당겨지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시선이 얽히고 이내 입술이 닿았다. 좌석에 파묻히도록 짙누르며 격렬한 키스를 퍼붓던 티엔이 만족스럽운 숨을 내쉴 때에야 키스를 따라가는라 할딱이던 하랑은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제정신이 든 하랑이 빽 하고 말했다. "들키면 안된다며!" 아주 대놓고 우리 사귄다고 신문에 전면광고를 내지 그러냐며 시종 짹짹거리던 하랑은 티엔이 갓길로 급하게 꺽어 차를 세우고 입을 막고나서야 조용해졌다.

 

 

 

 

 

 

갑자기 시작한 데이트였지만 상당히 즐거웠다. 예상치 못한 것이라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드라이브나 쇼핑도 즐거웠고 오랫만에 장도 잔뜩 봐왔다. 일상적이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한 일을 함께 나눈다는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해는 참 빨리도 귀가해버려서 어둠의 장막이 하늘을 가득 덮었다. 높다란 빌딩의 상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데리고온 티엔 때문에 부담감을 느낄 지경인 하랑이었지만 그보다 더한 행복함이 가득 차 있어서 톡톡 쏘던 입도 꼬리를 올리고 얌전히 있다. 창가에 비치는 야경이 아주 아름다웠다. 도시의 불빛은 참 화려해서 보고있으면 홀리게 된다. 약간의 와인이 들어가자 기분이 한층 붕 뜨고 불빛이 창가에서 잘게 흔들리며 춤추는 것만 같았다. 티엔은 살짝 눈을 깔고 야경을 내다보는 하랑의 옆모습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마중은 몰라도 진한 인사는 예정에 없던 것이었는데 하랑의 어깨라던가 장난스레 붙어있는 녀석들을 보니 충동적으로 행한 것이었다. 심통이 났나 했는데 금새 풀어진듯 하여 다행이었다. 볼이 살짝 발그레해진 연인을 바라보는 그도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다만 한 가지 초조한건 아직 그는 오늘의 선물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친구 녀석들한테도 그렇게 아낌 없이 주고선 자신에겐 왜 망설이는건지 티엔은 생각할 수록 조금씩 초조해졌다. 반면 하랑은 그런건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기분이 넘 좋아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는게 가장 큰 이유 되시겠다. 티엔은 하랑을 너무 구워삶아놓았다. 그래서 하랑은 티엔이 점점 말이 없어지고 있다는걸 그들의 플랫에 거의 다달은 차 안에서야 인지했다. 뭐가 마음에 안들었나 싶어 괜히 눈치를 보는 하랑과 그런 하랑이 말이 없어질 수록 점점 꽁해지는 티엔이었다.

 

 

 

 

 

플랫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는데 갑자기 티엔이 하랑을 돌려세웠다. 휘청하더니 침대로 넘어가 풀썩 드러누운 하랑이 제 위에 겹쳐진 티엔을 올려다 보았다. "ㅇ..왜?" "하랑, 나에게 줄게 있을텐데." "줄거...?" 하랑은 눈을 데굴 굴리면서 잠시간 고민했다. 그리고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해내고 어벙벙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티엔이 달디 단 초콜렛을 받고싶어한지 모른게 첫째요, 둘째로 그럴 줄은 까맣게 모르고 전부 친구들한테 떠넘긴 탓이었다. "어...초코 없는데." "..." 그리고 찾아오는 침묵의 시간에 하랑은 오그라드는것 같았다. 아니 이 인간은 좋아하지도 않던걸 탐내는거야 싶은 하랑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티엔이 속삭였다. "친구놈들 줄건 있고 날 줄건 없다는건가?" 티엔의 눈이 그야말로 깊게 활활 타오르는게 보였다. 아니, 당신 단거 질색하잖아! 하고 말하기엔 그 기세가 너무 흉흉했다. 지금 시방 위험한 짐승이 된 티엔의 아래에서 바르작거리던 하랑이 쩔쩔매며 눈치를 보다 티엔의 명치를 찍고 도망갔다. 뽀르르 튀어나가 부엌에 다다를 즈음에 바로 잡혔지만.

 

 

벽에 밀쳐져서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키스를 나누게 된 하랑은 자세가 불편해 낑낑거렸다. 비척거리는 통에 티엔이 더 흥분한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랑은 티엔이 자주 말하듯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재주가 아주 탁월했다. 잡아 뜯을듯 거친 키스에 호흡이 가빠와 짐승처럼 신음하며 서툴게 매달려 있는 상황이 한참이나 이어지다 티엔이 테이블 귀퉁이를 짚으면서 구석에 있던 뭔가가 툭 떨어졌다. 티엔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데 갑작스레 하랑이 빽하니 소리를 질렀다. "안돼!" 상기된 얼굴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하랑을 가볍게 벽에다 누르고서 뭐가 떨어진건지 시선을 옮기자 바닥에 떨어진 포장된 쿠키가 보였다. 꾸역꾸역 잘도 담아놨다 싶은 쿠키를 발견하고 티엔이 하랑을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하랑이 투덜거리며 입을 열었다. "단거 잘 안먹어서.. 린한테 부탁해서 쿠키를 구웠는데... 별로 안달아서 당신도 먹을 수 있을거라고... 아씨, 그니까 내 말 좀 듣지. 갑자기 왠 초콜렛 타령..!" "탁월하군." 별거 아닌걸로 으르렁 거린 격이 되어서 바람빠진 미소를 지은 티엔이 묘하게 행복해 보여서 하랑은 가만히 있었다. 조금 뒤엔 그 때 도망갔어야 했다는걸 깨달았지만.

 

 

 

 

"고맙군. 마음에 든다."

 

"...응."

 

"하랑."

 

"으응?"

 

"내일은 휴일이다."

 

"...?! 아씨, 잠깐만!"

 

"문답무용."

 

 

 

 

 

 

 

 

 

 

 

 

 

-----

 

 

발렌타인날 쓰기 시작했으나 열두시 지나서야 다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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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하랑 / 장난  (0) 2014.07.22
Posted by D.eL
조각2014. 7. 22. 03:03


1.

과제에 치여 죽으려하는 린을 위해서 잠시 짬을 낸 하랑은 낯선 거리로 차를 몰았다. 아직 익숙해 지지 않는 거리에 상가일지라도 먹거리나 괜찮은 펍 정도는 알고있다. 약간 낡은 차가 덜커덩 소리를 내며 멈춘 곳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동네의 깔끔한 식당이었다. 메뉴판을 보고 대충 주문을 마친 하랑은 빈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것이 포장되기를 기다렸다. 유니폼으로 셔츠와 하반신을 두른 검은 앞치마를 입은 알바중 한명이 다가왔다. 어쩐지 반들거리는 검은눈과 시선을 빼앗겼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듣기 좋은 목소리로 주문하셨냐고 묻는 그에게 고개를 주억이자 그가 들고있던 행주로 테이블을 닦아주었다. 그가 상체를 숙이며 턱선이라던가 목덜미가 보였다. 살짝 내비치는 살갗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그가 뒤돌아 가기 전에 간신히 읽어낸 명찰에는 티엔이라고 적혀있었다. 티엔. 티엔.. 수면 위로 물방울이 튀어오르는 느낌으로 혀 끝에서 터지는 이름이 느낌이 좋았다.

 

린은 달콤한 조각케잌을 보며 살찌겠다고 푸념했지만 하랑은 듣는둥 마는둥 멍하니 포장을 뜯고 크게 한입 집어넣었다.

 

 

 

 

 

 

 


2.
린은 위화감을 느꼈다. 교내식당이야 그럭저럭 먹어줄만 했지만 과자나 빵은 시내까지 차를 몰고 가서 사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부턴 군소리는 붙여도 말하기 전부터 자신이 자처해  다녀오는 하랑이 아닌가. 게다가 언제나 포장지에는 같은 과자점 이름이 쓰여있었다. 학기초에 잘못사귀어 코가 꿰인 친구놈이 새삼 걱정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같은 무용과 루시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툭 던졌다. 거기 좋아하는 알바라도 있나보지.


벌써 하루에 두번째, 예쁘게 묶인 크림색 레이스끈 리본을 바라본 린이 멍하게 되물었다. 또? 아까는 분홍색이더니 이번엔 색이 다르네- 같은 감상을 던지는 루시의 태평함이 얄미웠다. 그렇게 먹다간 또 살 찔거야 루시! 얼마 전 울상을 지으며 주변까지 힘들게 하는 다이어트를 했던 루시를 기억하는 린이 잔소리를 했다. 하랑의 너도 어서 먹으라는 눈초리에 결국 자신도 하나 집어들었지만. 맛은 있다만. 린은 입안이 온통 달콤하게 차오르는 마카롱을 먹으며 하랑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

"응."

 


대답 하나는 아주 쌈빡하게 잘도 하네.. 린의 불안한 마음도 모르고 즉답하며 슈크림을 우물거리는 하랑이었다. 군것질거리에 이끌려왔던 여자애들이 친구의 연애 이야기에 꺅꺅 거렸다. 그 소리에 이제 막 점심 메뉴를 받아온 이글과 마틴이 옆자리에 끼어들었다.

 

 

"오올~ 이하랑 애인? 예쁘냐?"

"반짝반짝해."

 


얼씨구. 하랑이 평소에 입버릇처럼 넣던 추임새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성깔있기로 유명한 이하랑이 무려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했기 때문이었다. 꼬맹이한테 봄이 왔다며 군소리하던 이글이 기어이 옆구리를 꼬집히는걸 바라보던 마틴이 스파게티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 사람 이름이 뭐야?"

"티엔."
"티엔? 그거 독특ㅎ, 큽, 뭐라구..?!"

 

 

이글과 마틴은 사례가 들려 기침을 하다 먹던 면을 코로 뿜어내고 말았다. 하랑이 질색하며 몸을 젖혔다. 그 모습을 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 여자애들 중 루시가 제일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어? 잠깐만.

 


"야, 니네 드러워."

"남자야??!!?!?"

" 응."

 

 

 

 

 

 

 


3.
허옇고 샌님같고 머리스타일도 웃기다, 웃는걸 못봤다,느니 하는 이글의 말은 코로 듣는지 무의미한 포크질로 조각케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게면서 정작 하랑의 눈은 문제의 알바에게 꽃혀있었다.

 

 

"아. 눈 마주쳤어!"
"아 그러세요오~? 나도 몇번이나 마주쳤지만 반응도 없거든?!"
"널 보는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아이구..."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게에 온통 여자 뿐인데 남자는 저들 뿐이었다. 앤티크형 인테리어에 달콤한 스윗츠 전문 제과점. 남자 셋이 조그만 테이블에 모여앉아서 이러고있다고 자각한건 마틴뿐이었다.

 

 

"우리 굉장히 여자애들 같지 않아? 대화 내용이나, 케잌이나..."
"이게 누구 때문인데!"
"하랑, 그거 안먹으면 내가 먹어도 될까?
"어, 그래."

"넌 그 니길거리는게 더 들어가냐. 그러고보니 너 때문이었구나, 그러고보니 니가 케잌 같은거 시켰잖아 이 자식아..!"

 

 

티엔은 오늘도 레스토랑이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4.
이글은 마틴이 조각 케이크를 무려 6조각이나 해치우는걸 실시간으로 바라보았다. 와..마틴 챌피그, 너 진짜 대단하다.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래절래하는 이글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마틴이 경건하게 포크를 내려놓자 하랑이 반짝이는 눈으로 마틴 앞에 바짝 당겨앉았다. 이글은 궁금증만 아니었어도 여기서 이러고있지 않았을거라며 마틴을 재촉했다. 아, 그래서 어서 그인간에 대한 것좀 어서 털어놔봐. 그랬다. 하랑이 매일 제과점에 출근 도장을 찍게 만든 티엔 정은 무려 마틴의 과 선배였던 것이다. 마틴은 만족스럽게 차를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이름은 알다시피 티엔 정, 중국 국적의 유학생인데 과제가 징글맞게 많기로 유명한 이쪽 경제학과에서 지금까지 무려 올 에이쁠을 자랑하는 전설이자 독종의 표상이라나. 이글은 이 대목에서 입을 쩍 벌렸다. 미친 그게 사람이야? 그 말에 마틴이 분기탱천해서 외쳤다. 그게 사람이겠어?! 우연히 팀 프로젝트를 같이 한적이 있는데 얼마나 쪼아대던지 팀원들 스케쥴 하나하나까지 관리하려고 들더라니깐! 나중엔 나더러 군것질을 줄이지 않으면 살이 쪄서 기숙사에서 강의실까지 전력질주를 해도 안될거라는 악담까지 했다고! 이글이 하랑에게 속삭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덕분에 졸업도 하기 전에 국제무역회사-마틴이 들어가고자 하는 곳이다-그랑플람에서 러브콜을 받아 인턴 생활까지한 엘리트라고.

 

한참 티엔의 독종일화를 듣던 이글이 물었다. 아, 제일 중요한걸 이야기 안했잖아! 그녀석 게이야? 신나게 조잘거리며 티엔의 이야기-뒷담-을 하던 마틴이 진지한 얼굴을 했다. 사실, 엄청 많은 여자가 대쉬했었는데 한번도 티엔이랑 잔 사람이 없어. 헐! 뭐야 그럼 가능성 있는거 아냐?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남자가 대쉬했는데... 했는데? 여자한테는 그나마 좋게 거절하더니 남자한테는 그딴거 없이 재기불능으로 만들었다니깐. 어쨌는데? 물론 그 녀석이 술 취해서 너 호모냐고 하면서 더듬어대면서 자기랑 침대로 가자고 꼬신게 문제긴 했지만, 그녀석, 거기를 확~ 차였어. 히익. 같은 남자라면 그럴순 없는거 아니냐... 그리고 언제는 한번 근처 갱녀석들이랑 시비가 붙은적 있는데, 와... 티엔은 분명히 소림사 출신이거나 중국 마피아일거야. 야 마틴, 그건 너무 멀리간거 아니냐. 아니야! 진짜 총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 안했어! 막 진짜 날라다녔는걸, 영화처럼. 이하랑 너 좀 위험하지 않겠냐?

 

가만히 듣기만 하던 하랑이 베개를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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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하랑 / 띠동갑  (0) 2014.07.22
Posted by D.eL
조각2014. 7. 22. 02:49



챠르륵. 녹슨 쇳방울이 걸음에 따라 탁한 소리를 내었다. 그건 죽음과도 닮아있는 곡소리였다. 흰 옷을 두른 아이가 앞에 서는 기묘한 행렬이 저편까지 이어졌다. 마른 땅은 볼품없이 발길이 떨어지는 자리마다 요란하게 기침을 해대었다. 부옇게 피어오르는 흙먼지에 희끄무레하게 잠긴 작은 소년을 분간할 수 있는건 어룽거리는 짤막한 그림자가 다 였다. 그마저도 저가 밟으면 끝인 작은 조각을 발밑에 기워붙이고서 그 애는 걸어간다.

금줄이 걸린 산의 입구는 찌를듯 타오르는 빛살 에도 불구하고 밤처럼 검었다. 무거운 냉기가 새어나오는 나무 그늘이 만들어낸 어둠이 사람들을 다 집어삼킬것 같았다. 산의 입구라기보단 봉인같은 그 기괴함 앞에 장정들이 썩썩 앞으로 나와 커다란 기둥을 박아넣었다. 굵은 땀방울을 훔쳐내지도 않고 움직이는 그들의 노력을 마을 사람들은 한 마디 말 없이 바라만 보았다. 이만한 사람이 다 모였건만 나뭇잎이 몸을 떨어대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우뚝 솟은 기다란 말뚝에 새빨간 색의 천이 핏줄기처럼 걸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흡사 창자가 너줄거리는 모양이었다. 공터에 기다란 기둥은 높은 곳까지 널빤지를 끈에 달아 올리는 장치가 있었고 끈은 바닥에 단단히 연결되어있었다. 이내 방울을 쥔 소년을 한 영감이 안아다 널빤지에 앉혔다. 다른 손이 붉은 천을 매듭지어 아이의 목에 씌웠다. 하이얀 고깔이나 파르스름 하게 질린 얼굴 만큼이나 앙초롬한 입술이 문득 인파를 헤치고 달려오는 남자를 보고 달싹인다.

 




"하랑아!!"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아슬한 비명은 제 아이를 불렀다. 수 많은 손이 나 어린 아비를 잡아 누른다. 텅빈 눈이 아비 얼굴을 제대로 담기도 전에 줄이 당겨져 야속하게 높이 높이 올라간다. 흡사 그네를 타듯 높이 올라간 줄을 불안하게 잡는 손이 조막만 했다. 하랑아. 아가. 아가. 제발 살려주시오. 우리 하랑이. 제발. 차라리 날 데려가시오. 간장이 녹아 창자가 끊어지는 광경 앞에서 그는 미친듯이 허우적 거렸지만 그 손 끝은 자식의 근처에도 닿을 수 없었다. 아버지! 간신히 부른 말이 유언이라도 되듯 도끼가 매정히 줄을 잘라내자 갑자기 뚝 떨어진 몸을 바라보게된 아비가 갈갈히 찢긴 심장을 토해내듯 비명을 질렀다. 순간 곤두박질치던 몸이 붉은 비단에 매여 떨어지던 속도 그대로 퉁 튀었다. 고깔이 떨어지고 이내 그 위로 방울가지가 마지막으로 파사,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끈이 흔들리는 대로 아이의 발끝이 경련했다.


그때 나는 듯한 신영이 솟구쳐 올라 하랑을 낚아채 기둥을 언덕을 오르듯 밟고 올라 그 꼭대기 위에 섰다. 품에 안긴 하랑이 끊어질듯 간헐적으로 숨을 쉬는 것을 확인한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아이 아버지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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